복자하(卜子夏)가 일찍이 말하기를 “부모를 섬김에는 능히 그 힘이 다하고 임금을 섬김에는 능히 그 몸을 드리고 벗과 함께 사귐에는 말에 믿음이 있다면 비록 배우지 않았어도 내가 반드시 배웠다고 이르리라” 하였으니 이 말로써 오늘에 찾아오매 거의 그러한 사람이 있으니 인공 재봉(在鳳)이 그 사람이다. 그 부모를 섬김에 내 일찍이 그 힘을 다한 것을 들어서 알고 있으니 비록 일찍이 임금은 섬기지 못하였으나 그런 사람임을 들어보면 또한 가히 그 뜻을 알 수 있다 하겠고 벗과의 믿음도 사람의 어질고 어리석음이 없이 누구나 한 번 말했으면 마음에 믿어야 하리니 이와 같이 한다면 특히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어도 될 것이다. 공의 이름은 재봉(在鳳)이요、자(字)는 근실(謹實)이니 본관은 교동으로서 한림학사 초당선생 교수부원군(휘邠)의 후손이요 석성부원군(휘璫)의 二十世孫이시다. 타고나신 천성으로 힘을 다하여 밭을 갈아서 효도로 부모를 봉양하였고 시탕(侍湯;약을 달임)할 즈음에도 하늘을 감동시킨 그 정성이야 어떠했겠는가. 부모를 대접한 논두렁의 가물치와 뒷동산의 꿩은 옛적 효자의 장막 가운데의 꿩과 얼음위의 잉어와 같은 것이요 눈 속의 버섯은 맹명(孟明)의 눈 속 댓순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三년을 시묘 사시매 비록 젊었으나 잠시도 제복(祭服)을 벗지 않았으며 산소의 거리가 十리에 달하였으나 비록 눈 오는 겨울 아침과 비 오는 여름 저녁에도 묘소에 울면서 절하매 무릎이 닿는 곳은 여름에도 풀이 없고 겨울에도 눈이 없었으니 이에 그 효성이 진실로 어떠하였는가. 효도는 어짐의 근본인즉 이로써 일백 가지 행실에 미루어 보면 어찌 잘못이 있었겠는가. 일가에 화목하고 궁한 사람을 구제하기란 사람에게 더욱 하기가 어려운 것인데 흉년이 들면 병을 기울이고 독을 기울여서 동리의 굶주림을 구제하였고 빚을 내고 번 돈을 장만하여 어려운 이의 호구세(戶稅)를 대신 주었으므로 온 마을이 은혜에 감탄하여 여러 입이 비석을 이루니 옛적의 석숭(石崇)과 의돈(猗頓)인들 곤궁한 이에게 은혜 베푼 것이 어찌 이에서 더했으랴. 이것이 모두 어질고 효도한 데서 나온 생각이었던 것이다. 일찍이 어려서는 낫을 주고 꾀꼬리를 사서 날려 보냈고 장년에 이르러서는 금을 주웠어도 주인을 찾아 주었으니 일생의 뜻이 깨끗하기가 정결한 금과 같고 아름답기가 흰 옥 같도다. 슬프ᅳ다! 이 같은 재목으로 다만 효도하고 몸을 닦고 남을 구제하는데 그치고 말았으니 만약 벼슬을 하였더라면 능히 그 몸을 이루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탄케 함이 어찌 그의 책임이 아니었겠는가. 말로서 뜻을 다할 수 없고 흠모되는 심정에 붓끝마저 멈춰지나니 다만 후세 사람들의 채택 있기를 기다린다고 이르는 바이다. 서기 一九三六年丙子 八月十七日 安東 金學圭 序